보청기를 끼면 귀가 더 나빠진다?
보청기를 끼는 할머니그림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노인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 중 적잖이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난청’입니다. 난청 때문에 사회관계가 단절되고 우울감이 높아질 수 있으며, 최근에는 난청으로 인해 쉽게 치매가 올 수 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노인성 난청은 노화의 과정이기 때문에 현재의 의학기술로는 안타깝게도 원래의 청력으로 되돌리기는 힘듭니다. 가장 쉽게 청력을 개선시킬 수 있는 방법은 보청기를 착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보청기 사용률은 아직도 낮은 것으로 파악되며, 보청기를 마련해 놓고도 활용하지 않고 장롱 속에 묵혀둔 경우도 상당수를 차지합니다.

국내의 한 연구팀이 보청기 사용 환자 266명을 조사한 결과 9%인 25명이 사용을 중단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구체적인 이유로는 “말소리를 구분하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이명이 들려서”. “귀에 느껴지는 이물감”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진료실에서 보청기에 대해 설명하면 다른 사람의 보청기를 빌려서 써보고 별로라는 반응을 보이는 분들도 있습니다. 보청기는 개인에 따라 미세하게 조절되기 때문에 빌려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며, 멀리서 거주하고 있는 자식들이 인터넷으로 구매해서 택배로 배송하는 보청기는 그야말로 무용지물입니다.

2000년 이후 국내에서 사용되는 보청기는 대부분이 최신의 디지털기술이 적용된 보청기들로써 넓은 역동범위 압축, 다중채널, 주파수 변이 기능, 소음 감소 기능, 지향성 마이크로폰, 이명 완화 기능, 그리고 무선통신(블루투스)등의 기술을 이용해 보청기 착용자의 편의를 위해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보청기는 청력을 정상으로 되돌려주는 기기가 아니라 난청 정도에 따라 맞춤형으로 소리를 증폭시키는 기기이므로 보청기를 통해 들리는 소리는 이전에 듣던 소리와 다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보청기를 거쳐 들리는 자신의 목소리와 주변 소리에 적응할 때까지 최소한 한달 정도 걸리고 필요한 소리만 선택해 듣고 완전히 적응하기까지는 3개월 정도를 예상해야 합니다.

처음 보청기를 착용하면 귀가 먹먹한 느낌이 들고, 크게 들리는 말소리가 구별이 금방 되지 않는 등의 현상을 호소하게 됩니다. 이때 보청기 착용을 포기하게 되면 ‘보청기를 끼면 귀가 더 나빠진다’는 잘못된 인식만 갖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청기 착용 첫 일주일은 TV와 라디오를 끄고 실내를 조용하게 한 상태에서 하루 2~3시간 정도 착용하고 그 뒤 점차 착용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보청기를 착용한 뒤 일상적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등 달라진 점을 꼼꼼히 기록해 보청기 관리자에게 알리는 것도 보청기 조절에 도움이 됩니다.

보청기 착용 후 초기에는 1~2주 간격으로 보청기 조절이 필요하고, 어느 정도 보청기 착용이 익숙해지고 나서 하루 8시간 이상 지속적으로 착용해야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으며, 보청기 완전 적응까지 3개월은 예상해야 합니다.

보청기 착용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가족의 도움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보청기 착용자와 대화를 할 때는 조용한 곳에서 한 명씩 하는 것이 좋으며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도록 합니다. 잘 알아듣지 못할 때는 반복해서 말하기 보다는 이해하기 쉬운 다른 단어로 바꿔서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격보다는 청력 상태에 가장 잘 맞는 제품을 고르는 것이 좋습니다. 크기가 작아 귀에 쏙 들어가는 보청기는 보기에는 좋지만 섬세한 손동작이 어려운 노인에게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귀에 넣거나 뺄 때, 건전지를 교체할 때 불편할 수 있고 떨어트려 망가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사용할 때 편의성도 따져봐야 합니다. 보청기에 적응하여 잘 사용하는 분들도 보청기 점검이나 외이도 확인 등을 위해 약 3~6개월에 한번씩 주기적인 점검이 필요합니다.

글_ 허경욱 교수, 인제대학교 이비인후과